유명악 묘비 상흔

丫凹丰凸㐃 2013. 8. 18. 20:12

 

가치도 서로 이득도 없이 겨레가슴에 상처로만 남은 3년여

 

1667(현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군사(君四). 대의(大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참의 성증(省曾)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철(

)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으나, 김창흡(金昌翕)에게서 배워 문명(文名)을 떨쳤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송시열(宋時烈)이 화를 당하자 그를 변호하는 소를 올렸으며, 1694년 갑술옥사로 송시열이 신원(伸寃)되자 벼슬에 뜻을 두고 1705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이후 의금부도사가 되고 지방의 수령을 거쳐 청주목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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