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적(洪萬迪) 묘역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사길(士吉), 호는 임호(臨湖), 아버지는 주국이며, 실학자로 유명한 만선이 그의 아우이다. 집안은 당대의 명문가로 증조와 조부 양대가 영의정에 증직되었고 저서로는 『임호유고』
묘역은[과거에는] 정부인 경주 이씨와 합장묘로 동향하고 있으며, 봉분 앞에는 혼유석(74×34), 상석(120×80×37), 향로석(29×20×35)이 있고, 그 옆에 서 있는 망주석은 새로 만들었다. 그 앞의 문인석(170)은 금관조복형으로 17세기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머리(65)가 전체의 1/3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옆에 새로 만든 묘표가 있다.
묘갈은 묘역 우측에 있으며, 대석과 옥개석을 새로 만들어 올렸다. 비신(76×38.5×199)은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부분적으로 마모가 심하고, 모서리 부분이 많이 깨어져 있다. 비에는 전서로 “司憲府持平洪公墓碣”이라 쓰여져 있고, 비문에는 “有明朝鮮國通訓大夫行司憲府持平洪公墓碣銘幷序”라 쓰여져 있다.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비문은 이병연(李秉淵)이 찬하였으며, 윤순(尹淳)이 명(銘)하고, 아들 홍중일(洪重一)이 썼으며, 재종증손 홍봉한(洪鳳漢)이 전자를 썼다. [글은 퍼 왔음에 현재와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