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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선 묘

丫凹丰凸㐃 2014. 12. 9. 18:57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중(士中), 호는 유암(流巖). 아버지는 예조참의 주국(柱國)이다. 노론 명문가 출신으로 1666년(현종 7) 진사시에 합격했고, 1682년(숙종 8) 음보(蔭補)로 관직에 진출했다. 사옹원봉사·공조정랑·장악원정·사복시정 등의 내직과, 함흥판관·단양군수·상주목사 등의 외직을 역임했다. 행실이 근엄하고 모범적인 관료 생활을 했으며, 당쟁에 가담하지 않아 완인(完人)으로 불렸다. 소론계 실학자 박세당(朴世堂) 등과 교유하면서 실용후생(實用厚生)의 학풍을 기본으로 했다. 지방관으로 전전하면서 항상 농업·농촌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가 은퇴한 뒤인 1710년경 농가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농림축잠업·주택·건강·의료·흉년대비 등에 대한 종합적 지침서인 〈산림경제 山林經濟〉 4권을 저술했다. 18세기 이후 유중림(柳重臨)·서유구(徐有榘) 등의 실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