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호 묘

丫凹丰凸㐃 2014. 12. 3. 19:22

 

홍명호
 

관직 -

1736(영조 12)∼1819(순조 1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초명 명한(鳴漢). 자[字] 공서(公舒).만회(萬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중성(重聖)이고, 아버지는 진보(鎭輔)이며, 어머니는 윤두천(尹斗天)의 딸이다.
1763년(영조 39) 진사가 되고, 1771년 참봉으로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수찬 등을 지냈다.  1779년(정조 3)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 북경에 다녀와서 그 곳의 지리·풍속과 사정 등 문견(聞見)을 왕에게 소상하게 보고하였다.
그 뒤 대사간·중화부사·한성부우윤·승지·대사성·대사헌 등을 거쳐 평안감사가 되었는데, 무열사(武烈祠)를 수축할 때 유생들로부터 돈을 거두었다는 혐의로 파직되어 금갑도(金甲島)에 유배되었다.
뒤에 풀려나서 이조참판·도승지·동래부사를 역임하고, 이어 순조대에 들어와 형조판서·수원유수·우참찬·예조판서·한성부판윤 등 내외의 요직을 두루 거쳐 판의금부사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다. 작품으로는 수원「지지대비(遲遲臺碑)」가 있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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