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을 감도는 금강가 나루터에 있다. 공주시가의 동북단에 인접하여 거대한 문루(門樓)의 형태로 꾸며져 있다. ‘拱北樓(공북루)’라고 쓴 현판은 성 안쪽에 해당되는 추녀 밑에 걸려 있다.
누 바깥쪽에 석성(石城)이 쌓여 있으며, 누의 중앙 한 칸에 해당되는 부분만이 뚫려 통로를 이루고 있다. 1603년(선조 36) 관찰사 유근(柳瑾)이 쌍수산성을 수축하면서 이 자리에 있었던 망북루(望北樓)를 중건하여 공북루로 고쳐 부르고 그 옆에 월파당(月波堂)을 지었다고 하나, 월파당은 1654년 붕괴되어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그 뒤 1663년 관찰사 오정위(吳挺緯)가 중수하고 송시열(宋時烈)이 중수기를 썼다. 1964년 국고보조로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음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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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오류라고 했던가?
왜 나는 공북루??를 "수북루"라고 기억을 하고 있고 또한 30녀년 전의 기록에 "수북루"라고 기록해했었을까?
나위 기억으로는 수북루이고 공산성 수북루라고
그것은 다른 검색을 하여도 나타나질 않는다.
그것은 재미있게도 전라도지역의 지명 중에 "이리"와 "정주"라는 지명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 현재의 바뀐 지명이 전혀 연관이 없지 않음에도
전혀 연관되지를 않게 보인다.ㅡ 그게 단기간에 쓰였더라도... 이거는 아니지 않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