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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 묘

丫凹丰凸㐃 2019. 7. 24. 12:28




선조35 별시문과  을과로 급제 , 1606 감찰, 이듬해 공조좌랑 

1609년(광해군 1)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문학 ,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을 겸하였다.

홍문관부응교(弘文館副應敎)  사간 , 김제남(金悌男)의 옥사(獄事)를 다스린 공으로 궁자(弓子) 1정(丁)을 하사받았다. 

1617년 정사 오윤겸(吳允謙)과 함께 회답부사(回答副使)로 일본에 가서 임진왜란 때 잡혀갔던 피로인(被虜人) 321명을 인솔해왔다. 일본 사행을 다녀오고 나서 

『동사일기』라는 사행록을 남겼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1618년 행호군(行護軍) ,  강릉부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