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응주(申應周)
1747년(영조 23)∼미상. 조선 후기 무신. 자는 시경(時敬)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부친은 통정대부(通政大夫) 행 인동도호부사(行仁同都護府使) 신대준(申大儁)이다. 형은 신봉주(申鳳周)이고, 동생은 신홍주(申弘周)이다.
1771년(영조 47) 식년시 무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0년(정조 4)에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에 임명되었다. 변방 지역에 성정군(城丁軍)을 설치하도록 건의하기도 하였다. 1783년(정조 7)에는 황해도병마절도사(黃海道兵馬節度使)로 재직 중이었는데, 칙사(勅使)를 대접하기 위해 보관해두었던 돈을 변통한 죄가 드러나게 되어, 괴산군(槐山郡)으로 유배 보내졌다. 1785년(정조 9)에는 재차 함경남도병마절도사(咸鏡南道兵馬節度使)에 임명되었다. 이후 변경 지역을 지키는 무관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부친은 통정대부(通政大夫) 행 인동도호부사(行仁同都護府使) 신대준(申大儁)이다. 형은 신봉주(申鳳周)이고, 동생은 신홍주(申弘周)이다.
1771년(영조 47) 식년시 무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0년(정조 4)에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에 임명되었다. 변방 지역에 성정군(城丁軍)을 설치하도록 건의하기도 하였다. 1783년(정조 7)에는 황해도병마절도사(黃海道兵馬節度使)로 재직 중이었는데, 칙사(勅使)를 대접하기 위해 보관해두었던 돈을 변통한 죄가 드러나게 되어, 괴산군(槐山郡)으로 유배 보내졌다. 1785년(정조 9)에는 재차 함경남도병마절도사(咸鏡南道兵馬節度使)에 임명되었다. 이후 변경 지역을 지키는 무관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