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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영 묘

丫凹丰凸㐃 2017. 12. 19. 11:02



두산백과

오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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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 1889년 황해도관찰사로 재임 중 서해 방위의 요지인 장연 오차진의 방비를 강화하였으며, 1890년에는 방곡령을 어긴 일본인을 처벌하여 방곡령사건을 일으켰다.
출생-사망? ~ ?
본관해주()
영중()
국적한국
활동분야정치

본관은 해주()이고, 자는 영중()이다. 오우선()의 아들로 태어나 오홍선()에게 입양되었다. 1855년(철종 6) 사마시에서 진사 3등으로 합격하였고, 1861년(철종 12) 식년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1863년(고종 즉위년) 부응교에 제수된 것을 비롯하여 사간·이조참의·좌부승지·예방승지·이조참판·동의금부사·대사헌·도승지·보덕 등을 역임한 후 1886년 형조판서를 거쳐 1888년 우참찬에 이르렀다. 

이후 외직으로 나가 경기관찰사를 지낸 후 1889년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황해도관찰사 재임 중 서해에 배들이 드나드는 길목인 장연()의 오차진()이 시설이 낡아 방비가 허술하므로 시설을 수리하고 병력을 증강시켜줄 것을 상소하여 허락을 받았다. 또한 1890년에는 연안부() 남대지()의 준설공사를 감독하였다. 

한편 그해 나라에서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해 곡물의 수출을 금지한 방곡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2명이 김천조포() 지방에서 대두()를 매점하여 인천으로 운송하려고 하자 이를 금지시킴으로서 소위 방곡령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후 한성부판윤·예조판서·이조판서·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준영 [吳俊泳]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