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맹 묘
고려 때 상주국 문하시중(上柱國 門下侍中, 묘갈에는 ‘고려개국공신 문하시중 조맹지묘’라고 오석에 씀) 풍양조씨 맹(孟)의 묘가 경기도 양주목 건천면 성릉리(현 남양주시 진건읍 송릉리 산53-4)에 묘좌유향(卯坐酉向, 서향)으로 모셔 있는데 그 입수(入首)에서 50m지점에 선조10년(1577) 8월 선조의 후궁 공빈김씨(恭嬪金氏 1553-1577)를 장사 지내게 되자 대신들이 파묘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선조가 허락하지 않았다가 33년 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1610년 3월 29일 생모 공빈을 공성왕후로 추존하면서 조맹의 묘소를 다시 파헤쳐 낼 것을 명하였으나 영의정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의 반대로 봉분만 헐어내는데 그쳐 무산되었다가 1630년 그의 후손 조수이(趙守彛)등이 상소하여 20년 만에 봉분을 다시 조성하였다<조선왕조실록「인조실록」인조8년(1630) 5월 21일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