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크며 보존상태가 양호한 조선시대 내시(內侍)의 집단묘역이 서울 북한산 자락에서 새로 발견됐다.
조선시대 내시 집단묘역이 조성돼 있는 곳은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199 중골마을로 북한산 의상봉 등산의 기점이 되는 백화사 인근. 이곳에는 내시파중
이사문(李似文)을 파조로 하는 이사문공파의 내시 분묘 45기가 모여 있다. 가장 오래된 묘는 정2품 품계인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승전관(承傳官)을 지낸 김충영(金忠英)의 묘다.
비 뒷면을 보면 “광해군 13년(1621)인 천계(天啓) 원년(元年) 8월12일 비를 처음 세웠다가 파손된 것을 1976년 후손이 다시
복원해 세웠다”는 기록이 나온다. 승전관은 내시중 왕과 왕비의 명령을 출납한 승전색(承傳色)을 말하는 것으로 내시부(內侍府) 직제상 정4품 상전(尙傳)이 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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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사문공파의 19대 후손 5가구가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후손이 소장한 이사문공파의 가승(家乘)에도 “(이사문의 증손자인 김충영의) 묘가 중흥동(中興洞) 면암(?u岩·일명 솜바위로 백화사에 있음) 동쪽 사패지(賜牌地)에 있다”고 돼 있다.
사패지는 공을 세워 받은 땅으로 실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김충영이 선조 34년(1601)과 광해군 9년에(1617) 각각 어린 말 1필과 품계가 가자(加資)되는 상을 받은 기록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곳은 김충영이 공을 세워 왕실로부터 하사받은 땅일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 이곳에 현재 남아 있는 묘 가운데 비석이나 상석에 관직이 기록된 이가 모두 14명이다. 이중 내시부 최고 관직인 종2품 상선(尙膳)에 오른 이가 박황(朴滉), 임성익(林成翼), 김성휘(金成輝), 박민채(朴敏采), 오준겸(吳浚謙) 등 5명에 달한다.
이중 임성익과 김성휘는 김충영의 장자인 박황의 아들이며, 오준겸은 임성익의 증손자인 박민채의 아들이다. 또 이사문의 12·13대 후손인 김재관(金在寬)·김규석(金圭錫) 부자는 종1품 품계인 숭록대부(崇祿大夫)에 각각 영내시부사(領內侍府事)와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를 지낸 것으로 적혀 있다.
이밖에 종1품 품계인 숭록대부에서 정3품 당하관(堂下官) 품계인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내시부 정6품 관직인 상세(尙洗)나 시릉관(侍陵官), 구한말 궁내부 소속관청인 시종원(侍從院)에서 봉시(奉侍)를 지낸 내시 등 다양하이 있다.
특히 비문의 ‘박공(朴公) 양위지묘(兩位之墓)’나 ‘배정경부인(配貞敬夫人) 전주이씨(全州李氏) 부좌(??左)’의 기록에서 나타나듯 내시의 부인도 사대부의 부인과 같이 정·종1품 품계에 오른 양반들의 부인이 받는 정경부인에 봉작됐음을 알 수 있어 주목된다.
박황의 비문에 나오는 ‘유삼자(有三子) 왈김여일(曰金汝鎰) 왈임성익(曰林成翼) 왈김성휘(曰金成輝)’란 기록 등은 내시들이 자녀를 입양해 대를 이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현재 이곳에는 부인과 함께 묻힌 합장묘가 7기, 나란히 묻힌 쌍분(雙墳)이 3기 남아 있다.
내시묘역을 발견한 은평향토사학회 박상진(40) 부회장은 “박황과 김성휘, 박민채 등의 비문에 현재 진관동(津寬洞)을 양주(楊州) 진관(榛官) 또는 진관(榛關) 등으로 기록하고 있어 진관내외동의 변천사를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묘 주변에는 문인석 5쌍, 비석 5기, 상석 20기, 망주석 9기 등의 석물(石物)도 남아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내시묘로는 경기 양주 효촌리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모신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봉되고 숭록대부(崇祿大夫)에까지 오른 연양군(延陽君) 김계한(金繼韓·?~1625)을 비롯한 직계후손 8위(位)의 묘와 서울 노원구 월계2동 인덕대 뒷산인 매봉에서 발견된 김계한의 손자로 통훈대부(通訓大夫) 내시부(內侍府) 상세(尙洗)를 지낸 승극철(承克哲) 부부묘 등이 있다.
특히 승극철 부부묘를 계기로 주변 초안산 일대 분묘군이 내시들의 집단묘역으로 언론에 부각되면서 지난해 3월 이곳은 사적 440호‘초안산 조선시대분묘군’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곳에서 정작 내시묘로 확인된 것은 승극철 부부묘뿐이며 매봉 지역에 50기 가까이 있었다는 내시들의 묘는 1990년대초 이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진 부회장은 “초안산 조선시대분묘군은 내시들의 집단묘역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조선시대 사대부에서 서민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의 무덤이 조성된 곳”이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내시묘역이 확인된 만큼 정부에서
하루빨리 사적으로 지정,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영창기자ycchoi@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