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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민씨 민 순 묘

丫凹丰凸㐃 2014. 12. 30. 17:24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초(景初)‚ 호는 행촌(杏村)·습정(習靜).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민학수(閔鶴壽)이다.

민순(閔純)[1519~1591]은 어려서 신광한(申光漢)에게 배웠고‚ 자라서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8년(선조 1) 효행(孝行)으로 천거되어 효릉 참봉(孝陵參奉)에 임명되었다가 학행이 알려져 전생서 주부(典牲署主簿)‚ 토산 현감(兎山縣監) 등을 지냈다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한 것으로 보인다.

1575년(선조 8)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으로서 인순 왕후(仁順王后)의 상을 당하였을 때 예관(禮官)들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의거하여 오사모(烏紗帽)·흑각대(黑角帶)로 상복을 정하자 백모(白帽) 3년의 고제(古制)를 따를 것을 주장하여 적용시키기도 하였다.

이후 용강 현령(龍岡縣令)‚ 청풍 군수(淸風郡守)‚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수안 군수(遂安郡守) 등을 지냈고, 또한 연안(延安)·성천(成川)의 부사(府使)와 공조 정랑(工曹正郞)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후진 교육에 힘썼다. 청풍 군수 시절의 행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한백겸(韓百謙)이 1579년(선조 12) 생원시에 합격한 사실로 보아 후학 교육에 뜻을 두고 많은 문인들을 교육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행주리(幸州里)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