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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공 하음군 전균[내시]

丫凹丰凸㐃 2014. 12. 20. 10:31

 

 

 

 

 

 

 

 

성종 4, 1(1470 경인 / 명 성화(成化) 6) 36(을유)

하음군(河陰君) 전균(田畇)이 졸()하니, 철조(輟朝)하고 조제(弔祭)와 예장(禮葬)을 예()와 같이 하였다.

전균은 강화(江華)의 환자(宦者)이니, 어렸을 때에 내시부(內侍府)에 붙이어 여러 번 옮기어 동첨내시부사(同僉內侍府事)에 이르고, 정통(正統) 정묘년에 통정 대부(通政大夫)에 승진하여 동판내시부사(同判內侍府事)가 되었다.

경태(景泰) 임신년에 가선 대부(嘉善大夫)에 승진하여 동지내시부사(同知內侍府事)가 되고, 계유년에 가정 대부(嘉靖大夫)에 승진하였는데, 이 해에 세조가 정난(靖難)하자 수충 협찬 정난 공신(輸忠協贊靖難功臣)의 호를 내려 주고 강천군(江川君)에 봉하였다.

을해년에 세조(世祖)가 즉위하여 또 좌익 공신(佐翼功臣)의 호를 주었고, 천순(天順) 무인년에 자헌 대부(資憲大夫)에 승진하여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가 되고, 임오년에 정헌 대부(正憲大夫)에 승진하고, 성화(成化) 병술년에 숭정 대부(崇政大夫)에 승진하여 하음군(河陰君)에 고쳐 봉하였다.

무자년에 숭록 대부(崇祿大夫)에 승진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하니, 나이 62세였다.

환관(宦官)으로 공신이 되고 작위(爵位)1품에 이른 것은 전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의 아들 전구복(田九卜)으로 후사를 삼았다.

이때에 봉상시(奉常寺)에서 시호(諡號)를 양경(襄敬)으로 하려 하니, 사헌부(司憲府)에서 논박하여 아뢰기를,

환관이 비록 작은 공로가 있더라도 군()을 봉한 것이 이미 과한데, 이름을 바꾸는 시호를 어찌 지나치게 가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

하여, 마침내 시호를 내려 주지 않았다.

 

 

 

 

 

 

 

 

 

수충협찬 정난

하음군 시양

 

시 양경공 전균[襄敬公 田畇] 畇 - 밭 일굴 균

 

 

 

 

효자 첨지 전구복